부유 흔적 (6유형이야기)

작성자 : 김금심
작성일 : 11-10-27 21:30 조회수 : 420
부유 흔적 | 6유형이야기
3 / 2011.10.2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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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 

 

부유하는 느낌. 내가 나인 것 같지 않은 느낌. 땅에서 떨어져있는 느낌. 이 단어를 되새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데 일곱살 즈음 자고 있던 내가 깨어나는 나를 보고 있는 장면이 그것이다. 아마 전신이 다 비치는 큰 거울을 통해 누워있는 나를 본 것 같은데 그 기억이 늘 <의아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그때 난 '이 위치에서 내가 보일 수가 없는데 이상하네..'하고 의아해하며 다시 잠자리에 누웠던 것 같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일어나 거울을 본 것은 맞는데, 거울 속의 나는 누워있었다.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고 짧은 시간동안 바라보고 있던걸 기억한다. 아마도 '내가 누구지 ?..'하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부유하는 느낌이란 이 묘한 기억이 주는 느낌과 한 선상위에 있다. 이 느낌을 장난스럽게 유체이탈이라고 희화화할 때도 있고, 유리된 느낌, 분리감, 무소속감, 빈 공간 혹은 공허감이라고도, 한데 묶어서 정신적인 혼란스러움이라고도 표현해왔다. 유체이탈 상태라는 건 내가 무기력한 몸과 마음을 끌고 나태한 시간을 보낼 때 자조적으로 쓰는 표현이기도 한데 결국은 부유하는 나와 무기력한 나는 하나로 이어져있는 것 같다. 다양한 단어들로 치환할 수 있는 나의 이 부유하는 느낌은, 뿌리는 하나지만 결국 그 가짓수대로 어느 상황 어느 맥락에 따라 다양한 현실로서 구현되었다. 

 

그 한 가지는 '흔적'에 관한 것이다. 인간관계 차원에서 말한다면, 타고나기를 관조적인 기질로 태어나 정서적으로 깊이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지속적으로 상황에 개입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그것이 불가했다. 어느 상황과도 어떤 사람들과도 '고리'가 없는 느낌.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고 또 쉽게 떠났다. 섞이고 싶다 아니다 같은 정서적 욕망이 개입한 문제가 아니다. 부유하는 내가 관계에서도 부유했다고 밖에 좋은 표현이 없다. 나라는 느낌을 잡지 못하므로 당연히 관계 속의 '나'를 구축할 수 없다고 하면 더 좋은 표현일까. 더불어 내 의지가 아닌데도 얼떨결에 말없이 사라져야했던 실제적인 경험들도 물론 따라온다. 내 우주는 나를 부유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있는건가 싶게 만드는 환경도 분명 존재했다.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내 부유성은 사적인 관계에서 뿐 아니라 어떤 소작업에서도 그 몫을 한다. 내 영향력을 끼치고 함께 명단에 이름까지 올리는 상황이 된다해도, 명단 그 자리 외에 나는 없어지고 마는 느낌. "존재가 휘발된다." 나를 기억하는 이가 없고 내가 기억하는 이가 없다. 타인과의 고리에 약했으니까. 그런데 이 활동에서의 흔적없음은 도저히 어떻게 형용해야할지 모른다. 다만 지속적으로 이어져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라는 게 없는 일회적이고 산발적인, 활동에서의 이 흔적없음은 나의 부유성이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무엇을 하였나'까지 전이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단순하게 상황묘사만으로 설명한다면 "난 집단과 잘 안맞는 사람이라 볼일 끝나고 나면 바로 자리를 떠"같은 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그들을 떠났는지 혹은 분리되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나는 그들과 바로 앞날을 약속하며 함께할 수도 있다. 이 기억들이 말하는 것은 끝내 건드려지게 되는 내 안의 '어떤 것'이다. 살아있고 싶고 뜨겁고 싶으며 땅에 붙어있고 싶어한 갈망이 내 인생 전체에 배여있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부단히 흔적을 남기려 했고 뜨거우려고 했다. 같아지면 그게 가능할거라고 생각했다. 여러 개로 산발되어있는 나를 모아서 하나로 만들고 땅에 붙게 만들면, 거울 속에 자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은 분리감을 느끼지 않을 거라는 목적의식이 덧입혀진게 내 일상이었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골몰하는 어느 순간에는 비로소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듯한, 마치 내게 늘 있던 그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씻어낸 것 같은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관성에 몸을 맡겨 '흔적 남기기'에 성공했다며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이. '이제 거울 속의 나는 보지 않아도 돼. 거울을 보는 나만 있을 뿐이야. 거울 속엔 나와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내가 있을 뿐이야'..   

 

부유를 잊고 지내는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다시금 보게 돼.  

거울 속에 나는 보이는데 거울을 보고 있는 내가 없어.

바로 지금, 너는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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